Document/아름다운이야기

혼자 보기 아까운 글 : "벌집 삽겹살 대표 이승환"

멋쪄  2012. 3. 28. 12:00
혼자 보기 아까운 글 : "벌집 삽겹살 대표 이승환"


 "저 사람, 벌집삼겹살 아니야?" 요즘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부른다.
 "이승환" 이라는 번듯한 이름이 있는데도 말이다. 사실 개그맨으로 활동했을 때도 나는 이름으로 불린적이 거의 없다. 무명이었던 5년 동안은 아에 이름 불릴 일이 없었고, 얼굴이 알려진 다음에도 "느끼남"으로 더 많이 불렸다.

 내 이름이 제대로 불리게 된 것은 개그맨을 그만두고 사업가전업한 다음이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내가 경영하는 삼겹살 체인점연매출 200억 원대박을 낸 뒤로는 이승환 대신 그 체인점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더 많아졌다.

 사실 지금의 대박이 있기까지 스스로르 벼랑에 몰 만큼의 수많은 쪽박들이 있었다. 갈갈이 삼형제로 인기를 얻은 직후, 전북 익산에 작은 주점을 열었지만 6개월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또 한 선배와 영유아용 디지털학습기를 임대하고 판매하는 회사를 차렸다고, 전 재산의 60%를 바닥내기도 했다. 철치부심하고 또 다시 캐릭터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이번에도 25억 원의 적자를 내고 말았다. 연이은 사업 실패로 집을 가압류 당했고, 설상가상 사업하돈 동생의 빚까지 떠안게 되었다.

 그러던 2005년 3월의 어느 날, 나는 한강 다리 위에 섰다. 더 이상 늘어나는 빚을 감담할 수 없던 나는 모진 마음을 먹고 만 것이다. 자살을 결심하고 한강 다리 위에 섰을대, 나는 말 그대로 절망의 끝자락에 선 기분이었다.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승환이냐?" 반가운 목소리는 현재 삼겹살 체인점의 동업자 중 한 사람이 한성진 이사였다. 이 한통의 전화가 내 인생을 역전시켜줄 희망의 러브콜이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그런 그가 내 사정을 알고 선뜻 자신의 아파트 중도금 3천만 원을 내놓은 것이다. 그 돈을 받고 눈물이 앞을 가려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이후 나는 은인 한성진 이사삼겹살 체인점을 열었다.

 절망의 늪에서 나름 끌어낸 것은 기회도 아닌 누군가의  따뜻한 손이었다.  아파트 중도금을 선뜻 내준 한 사람의 온기 덕에 내 삶에서 오기와 독기가 빠지고 그 자리에 사람들이 채워졌다. 그렇게 다시 일어선 지금 나는 260개의 가맹점을 거느린 외식업체의 대표이사, "이승환"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위기는 옵니다. 하지만 이 위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을 달라집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길 바랍니다.